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안 안토니오 피치 (문단 편집) ==== 클럽 ==== 라리가에서 90년대 피치치를 수상했을 정도로 스타 플레이어 공격수로 활약했다. 1987년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프로에 데뷔해 3시즌동안 27골을 넣으며 일약 주목받는 공격수가 되었고 이후 멕시코 리그의 톨루카에서도 한 시즌 동안 30경기 12골을 넣으며 활약한다. 이에 유럽 클럽들의 관심도가 집중되었고 결국 [[라리가]]의 [[CD 테네리페]]에 입단하며 첫 유럽 생활을 시작한다. 그는 테네리페에서도 빠르게 주전 공격수를 차지하며 두 시즌 동안 리그 30골을 잡아내는 특급 활약을 펼쳤고, 두 번째 시즌 팀의 [[UEFA컵]] 본선 진출에도 크게 일조한다. 결국 리그 상위권 팀이었던 [[발렌시아 CF]]가 그를 1993-94 시즌 전격 영입한다. 그런데 이 시즌 기대에 못미치는 활약으로 19경기 4골로 크게 부진한다. 결국 다시 테네리페로 돌아가게 되었는데, 여기서 그는 테네리페 1기 시절보다도 더 폭발적인 활약을 했고, 1995-96 시즌에는 커리어 하이를 찍으면서 리그 41경기 31골로 [[피치치]]를 수상한다. 테네리페의 리그 성적 또한 5위를 기록하며 또다시 [[UEFA컵]] 진출에 성공하는 등 클럽의 최전성기가 열렸다. 결국 시즌이 끝나고 다시 한 번 빅클럽들의 영입 대상에 오른다. 이번에는 리그 양강 중 한 팀인 [[FC 바르셀로나]]로 이적했다.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나 화려한 경쟁자들이 문제였다. 당시 리그를 씹어먹던 [[호나우두]]와 [[소니 안데르송]]이 이미 버티고 있었고, 당시 공격수로써도 재능을 뽐내던 [[루이스 엔리케]] 또한 그의 경쟁자였다. 결국 그는 제한적인 기회만 받을 수 밖에 없었다. 그럼에도 바르셀로나에서의 두 시즌 동안 48경기 11골로 나쁘지 않은 기록을 작성한다. 우승복은 그래도 제대로 챙겨가서 1996년 [[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]], 1997년 [[UEFA 컵 위너스컵]]과 [[코파 델 레이]], [[UEFA 슈퍼컵]] 1998년 [[라리가]]와 [[코파 델 레이]] 우승 등 다수의 트로피를 들었다. 1998년 여름 그는 고향인 아르헨티나로 돌아간다. 2000년 잠시 포르투갈의 [[FC 포르투]]에 입단했으나 반 시즌 동안 11경기 3골로 짧은 족적을 남긴 채 다시 아르헨티나 리그에 복귀했고 2002년에는 장기 부상을 당한 [[마르틴 팔레르모]]의 긴급 대체자로 [[비야레알 CF]]에 깜짝 임대이적하며 13경기 1골을 기록하는 등 잠깐의 라리가 생활을 더 했다. 짧은 비야레알 시절을 끝으로 그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